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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얘기/카투사로 자원하여 입대할 수

카투사로 자원하여 입대할 수...

by forever♧ 201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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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변화산 기도<2>(눅 9 :28~29)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배우는가? 예수님이 산상에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던 동일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와 그 응답으로 일어났던 사건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첫째, 우리는 기도할 때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확인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도하다가 자신의 사명을 확인하게 된다. 예수님의 경우는 자신이 생각한 사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완전히 일치했으나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 그를 위해 인생을 바쳐 살려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다른 사명을 확신하게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필자의 경우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 필자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예수님의 믿게 되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서부터 내 마음속에는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공부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위해 선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부터 특별히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결심 때문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회화, 청취력, 독해력 항상에 전력을 다해 공부했다. 물론 그 당시 토요일과 주일에 극동방송에서 오후 2-4시에 방영하는 영어방송도 열심히 듣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은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신학교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계획은 대강 이러했다. 대학 2학년말까지만 공부하고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카투사 군종이 되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굉장한 지혜로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것이지만) 판단을 했다. 그리고 학교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마다 선교사가 되는 꿈의 실현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선교사가 되려면 영어를 사용하는 미군부대에 카투사로 입대해야 하고 미군 군종이 되면 영어로 설교할 수 있으니, 선교사가 되는 예비 훈련을 군 복무 기간 중에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1981년까지만 해도 카투사로 자원하여 입대할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는 카투사 병을 논산 훈련소에서 무작위로 차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배경이 있고 인물이 잘 생긴 사람들이 뽑힐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도 늘 걱정이 되었다. 이렇다 할 배경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키가크고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과 의심은 늘 있었다. 계획대로 군에 입대할 즘 기도대로 카투사 시험제도가 생겼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카투사 시험에 합격하여 입대하게 되었다. 1982년 3월에 군에 입대하여 카투사가 되기 위해 논산 훈련소로 입소하였다. 그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결국 나를 선교사로 만드실 모양이구나 하며 너무나 기뻐했다. 그래서 하루 전날 논산에 도착하여 훈련소 근처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런데 필자는 결국 훈련소에 입소했다가 카투사가 되지도 못하고 8일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필자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한번도 예측하지 못했다. 훈련소에서 귀향 조치를 받은 것은 패결핵 때문이었다. 어리석고 우둔한 필자는 집으로 돌아오면서조차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알지를 못했다. 그 때 필자는 미군에 카투사 군종 자리가 없어서 집으로 잠시 돌려보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종의 반항의 기도를 했다. 기도가 아니라, 따지는 식의 기도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은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하루도 못돼서 수원 지방 병무청의 신체 검사 출두명령을 받아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신체검사를 받으려 가면서도 필자는 어리석게도 하나님, 일년후에 다시 카투사 군종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하면서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필자의 소원대로 군대를 나중에 다시갈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엑스레이 검진 결과 필자는 심각한 패결핵 환자로 판명되었다. 그것도 논산 훈련소에서 귀향 조치 당한지 일주일도 안 돼서 상태가 휠씬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필자는 군 복무 의무를 완전히 면제 받게 되었다. 바로 그 날부터 징집면제로 민방위에 편입되었다. 필자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이러실 수가 있을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의아스럽게만 했다. 이제는 카투사니 미군 군종이니 하는 생각은 싹 사라지고 오히려 건강에 대한 걱정만 태산같이 높아졌다. 그러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두 군데나 병원을 찾아갔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병원에서의 진단은 패결핵이 내게 전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한 병원에서의 진단은 패결핵이 내게 전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한 병원에서의 판단은 과거에 패결핵에 걸렸던 흔적이거나 재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약을 먹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에 약을 복용하면서 1년간 집에서 쉬고 있는 동안에 엄청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멋있고 굉장한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영원 전에 세우신 계획과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것을 이루려고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꺠닫게 해주신 생각은 "네가 누구관데 네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네 인생을 설계하고 나를 위해 살려고 하느냐, 나는 너를 위해 계획을 세웠고 내가 그것을 너를 위해 이루겠다" 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선교사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아니라 필자가 하나님의 재가 없이 생각해 낸 결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계획한 사명임을 알게 되었다. 9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지금 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내 적성과 취향에 맞기 때문에 최상이라는 것을 체험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필자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내게 위임한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방편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삶의 그체적인 현징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뜻의 실현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기도를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둘째로, 우리가 기도한다고 예수님처럼 부활의 영광을 미리 미리 맛보는 변화를 체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변화를 체험한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고, 마음도 변한다. 많은 변화들이 기도를 통해서 일어난다. 일어나는 모든 변화들은 대부분 우리 편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데 우리를 위해 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당신의 인격은 몰론 주권적인 계획과 뜻을 따라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격의 성숙 혹은 성화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예수님을 모델로 하녀 변화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 자동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과정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변화이다. 이 점에서 기도는 아주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 읽음, 말씀 선포, 세례와 성찬, 기도가 있다. 이중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것이 기도이다.기도가 없을 때 말씀을 읽어도 감동이 없다. 설교를 들어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성찬에 참여해고 대속적 사랑에 대한 감격이 없다. 이러힌 모든 것들은 기도가 살아날 때 살아난다. 기도하고 난 후에 읽는 말씀이 깨달아지고. 선포되는 설교가 가슴을 때리며, 성찬에 눈물 없이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기도가 은혜의 방편으로서 언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이렇듯 기도는 신자의 영적 성숙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가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인품과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성화이다. 계속적인 성화는 말씀, 성령, 기도의 삼중 작용에 의하여 진행된다. 성화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느 것이 하나만 빠져도 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항상 변함없이 성도 각 개인에게 있다. 마음판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지워지는 일은 없다.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를 떠나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바른 기도가 없을 때에 말씀의 감동과 감화도, 성령의 인도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 기도의 노고와 땀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체험하게 되고 , 성령의 주권적인 인에 민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 자신의 영적 현주소를 발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 놓아야 할 더럽고 추악한 옛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며,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입혀진 새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바른 기도는 하나님께서 신자의 성화를 위해 쓰시는 거룩한 도구이다. 기도가 거룩한 도구로 활용되는 곳에 말씀 운동과 성령 운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기도의 내용을 말씀으로부터 받고, 기도의 원동력을 성령으로부터 받아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한 기도에 영적인 변화릐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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