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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는“점호만 없지 편한 군생활 아녜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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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호만 없지 편한 군생활 아녜요”
 
 
카투사 5000명 근무
언어·문화 갈등 딛고 韓·美 안보협력 이음쇠 역할

(카투사전우들의뜨락 김기형전우 글 옮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콜린 파월 전 미합참의장은 95년 발간한

회고록 「나의 미국 여행」(My American Journey)에서 한국군 카투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카투사는 내가 지휘했던 부하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강인하고 영리했으며, 잘 훈련된 군인들이었다』

(The Katusas were among the finest troops I have ever commanded. They were indefatigable,

 disciplined, and quick to learn. ­ 「밸런 타인 북스」 95년판 180∼181쪽)

    최근 주한미군 부대에서는 파월 전 합참의장의 이같은 회고의 신뢰성을 입증해주는 「사건」이 있었다.

카투사 사병이 미군의 하사관 진급 필수 코스인 「초급지휘자 양성과정」 (PLDC·The Primary Leadership

Development Course)을 3회 연속 수석졸업한 것이다. 수석졸업의 영예를 차지한 카투사는 조재섭상병

오종민병장 이재욱상병. 조상병은 96년 11월11일부터 12월10일까지 한달간 162명의 미군과 50명의

카투사가 참가한 제11기 PLDC에서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오병장과 이상병도 각각 지난 8월27일∼9월26일과 10월7일∼11월7일

 열린 제9, 10기 PLDC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들은 체력의 열세와 언어장벽 등 여러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최우수 성적으로 PLDC를 마침으로써 카투사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처럼 「우수한」 부대인 카투사의 실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있는 것이 별로 없다.

명칭부터 「카츄샤」로 잘못 발음되고 있다. 정확한 발음은

「카투사」 (KATUSA·Korean Augmentation to the U.S. Army). 「주한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이란 뜻이다.

    카투사들은 미군에 배속된 당연한 결과로 병영생활과 업무의 모든 분야에서 미군의 지원과 지휘를

 받는다.

군복도 미군과 똑같이 입고, 식사도 미군식당에서 하며, 미군과 똑같이 훈련하고 잠도 미군 막사에서

 미군들과 같이 잔다.

    똑같은 미군장교의 명령을 받기도 하고 미군 하사관과 똑같이 미군 분대원들을 지휘하기도 한다.

카투사는 인사행정과 정신교육 분야에 대해서만 「미8군 한국군 지원단」 (단장 이명완대령)을 통해

한국군의 통제를 받는다.


전쟁상황과 똑같게 훈련 산악행군 다반사


     96년 12월 현재 카투사의 총 병력은 4800여명. 한국전쟁 직후

 2만700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전후 감축되기 시작해 80년대

초까지 7000명 수준을 유지하다 87년부터 5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이같은 숫자는 국군 전체 병력의 1%에도 못미치지만 주한미군

(총 3만5000여명)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 병력의 14%에 이르는 큰 규모다.

 한국군 지원단의 한 관계자는 『미군측에서는 카투사 1명이 미군 1명과 동일한 전투력과 업무수행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카투사 병력의 증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투사 하면 「편한 군대생활」을 연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히 전방부대인 미 보병 제2사단에서 근무하는 전투병들은 한국군이 생각하기 어려운 힘든 훈련을

받기도 한다. 자유의다리 건너 최전방지역의 「캠프 그리브스」에 있는 2사단 산하 ×××보병대대에

근무하는 조재섭상병은 『미군들은 훈련도 실제 전쟁상황과 똑같이 한다.

    알파중대와 부라보, 찰리중대는 순수 전투보병인데 한번 훈련을 나가면 3주간 계속한다.

3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야간 산악행군을 하기도 한다. 내가 속한 델타중대는 토미사일

부대인데 40kg이 넘는 무기를 메고 몇시간씩 행군하기도 하고, 한겨울에 무기를 차에 싣고

고개를 내민 채 쌩쌩 달리기도 한다. 한국군은 탄약을 아끼느라 훈련을 대충 하기도 하지만 미군은

 할당된 탄약을 다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 마지막날 새벽 2시까지 총을 쏘아대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95년 1월에는 미 2사단 ×보병대대 소속 카투사 3명이 기동훈련 도중 장갑차에

 치여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었다.

 조상병은 그러나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점호가 없는데다 훈련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져

공부를 할 수 있고 외박과 외출도 비교적 자유스럽게 이루어져 한국군 생활보다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전체 카투사의 40%에 이르는 1900명이 2사단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이

 보병이다.


고학력 불구 단순 노무 잡역 등 허드렛일에 갈등


    주한미군의 후방지역 캠프는 용산과 평택 대구 부산 등지에 산재해있다.

후방지역 부대들은 대부분 지원부대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곳에서 근무하는 카투사들도 거의

 기술병이나 행정병 운전병 등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의 한 도시를 옮겨다놓았을 정도로 갖가지

편의시설을 갖춘 용산기지는 카투사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

    현재 900여명의 카투사가 용산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후방지역 근무라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카투사들이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을 지녔는데도 불구하고 미군부대내에서 단순노무직이나

잡역직을 맡아 허드렛일을 하면서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또 미군들과 언어적 장벽과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한 정신적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같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카투사 제도는 카투사 개인과 국가방위의 양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종민병장은 『카투사 근무는 영어공부와 함께 미국 문화를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접한다는

점에서 자기성장의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성식씨(83∼85년 미8군 감찰사령부 근무·오성식생활영어 SOS7200 저자·오성식 영어학원장)는 『

나는 카투사 시절 미군들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영어공부를 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방대한 생활영어

저작물을 만들었다. 카투사 생활이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영어공부를 하고 군사외교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좋은 기회다』고 말했다.

    한국군 지원단의 김권일대위(정훈과장)는 『카투사는 한미 양국군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한미연합전략증강에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 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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