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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6·25] 백발되어 만난 '최초의 카투사' 전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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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방

[나와 6·25] 백발되어 만난 '최초의 카투사' 전우

입력 : 2010.03.16 02:40 / 수정 : 2010.03.16 08:33

본지에 각각 수기 보내와… 특별취재팀이 만남 주선

본지에 '나와 6·25' 수기를 보낸 참전용사 두 사람이 특별취재팀의 주선으로 58년 만에 감격의 상봉을 했다.

지난 12일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 1층 로비. 송백진(87) 예비역 소위와 류영봉(78) 예비역 중사가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얼싸안았다. 이들은 카투사(KATUSA) 1기 출신으로 일본 후지산 훈련→인천상륙작전→흥남 철수를 함께한 전우(戰友)다. 군번이 'K1101741(송씨)'과 'K1101755(류씨)'로 맨 끝 두 자리만 다르다.

이들은 각자 "최초의 카투사"라며 수기를 보내왔다. 이동 경로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한 특별취재팀이 두 사람에게 확인한 결과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송씨와 류씨는 나란히 1950년 8월 16일 대구에서 징집됐다. 송씨는 그날 밤 대구시내 한 여관에서 잠옷 바람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길거리의 헌병이 "빨리 나와"라고 소리치자 얼떨결에 군 트럭을 탔다. 경기도 부천 출신인 송씨는 경남 진주에서 건설기술자로 일하다가 동료들과 대구로 피란 왔을 때였다. 대구상고에 재학 중이던 류씨는 아침 등굣길에서 "학생도 군대 가야돼"라고 말하는 경찰관에게 붙들려 군 트럭에 타게 됐다. 카투사제도가 급하게 만들어진 탓에 징집도 마구잡이였다.
지난 12일 본지 특별취재팀 주선으로 58년 만에 만난 류영봉(왼쪽)씨와 송백진씨가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부산항, 일본 요코하마항을 거쳐 도착한 곳은 후지산 기슭의 미군 7사단 훈련캠프. 함께 건너간 2000명의 카투사들과 함께 미 7사단 17연대에 배속됐다. 송씨는 연대장 참모가 됐고, 류씨는 의무(醫務) 대원이 됐다.

일본에서 3주 훈련을 받고 곧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군산 상륙 소문이 돌았는데 내려보니 인천이었습니다. 지리에 익숙한 카투사들이 UN군을 많이 도왔죠.(류씨)" 이들이 속한 미 17연대는 함남에도 상륙작전을 펼쳐 혜산진(현 혜산시)까지 진격했다. 미군들이 압록강변에 성조기를 꽂자 카투사들도 질세라 나란히 태극기를 꽂으며 자존심을 세웠다.

송씨는 "처음엔 미군이 카투사에게 모든 걸 가르쳐줬지만 1년쯤 지나자 기관총 쏘는 역할은 대부분 카투사가 맡고 있더라"고 말했다. 송씨와 류씨는 부대가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주둔할 때까지 함께 이동하다가 이후 다른 전선(戰線)으로 헤어졌다.

둘은 처음 커피를 맛봤을 때의 추억, 영화를 보다 적의 박격포 공격을 받았던 일 등을 되새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송씨는 1953년 전역할 때 미 국방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대구 미군기지 병원에서 46년간 일하다 은퇴한 류씨도 미 국방부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UN데이(10월 24일)에 열리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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